문자는 독보적이다

문자는 정말 대체 불가능한 존재 같습니다. 여러가지 역할을 할 수 있으면서, 각 역할을 분리해 분야별로 따로 따져보더라도 대체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정보의 형태로서

정보는 여러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빛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시각적 정보라고 부릅니다. 정보는 전달과 저장의 용이성에 따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빛은 전달이 일부 용이하고 저장은 쉽지 않습니다.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도 있지만, 정확히 전달하려면 다른 매체가 필요합니다. 종이나 디스플레이 같은 거요. 저장은 어떠한가요? 우리 신체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적어도 사진기와 필름 정도는 있어야 해요.

대부분의 정보는 전달과 저장을 잘 하기 위해서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합니다. 최첨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무인도에 떨어졌을 때 구현할 수 없는 정도를 말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형태의 변환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시적인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소리를 전달하려면 구강으로 흉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빛을 전달하려면 따라 그릴 수밖에 없습니다. 혹은 몸으로 흉내내거나요. 하지만 이런 형태는 재현율이 너무 떨어집니다.

그러나 문자는 시각적·청각적 형태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둘 다 인간의 신체로 온전히 구현할 수 있습니다. 다시 무인도에 가 볼까요. 청각적으로 전달하려면 발음하면 됩니다. 시각적으로 전달하려면 땅에 적으면 됩니다. 저장도 마찬가지로 어딘가 적어두면 됩니다.

이렇게 유연하면서 손실이 거의 없는 정보는 흔치 않습니다.

매체로서

스마트폰 알람으로 일어나 유튜브를 보다 자는 현대 사회에서 사실 위의 장점은 와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자는 미디어, 즉 매체로서의 입지도 확실합니다.

글과 이미지를 제외하고는 현대의 미디어는 모두 시간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혹은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일정 만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간축에 연속한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마치 인터스텔라의 블랙홀 내부 모습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됐을 때 단점은 정보의 '재생'을 조절하기 위해서 추가적인 조작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그 조작 또한 기능이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라디오를 마음대로 들을 수는 없죠. 그런 기능은 없으니까요.

그러나 글과 이미지는 시간에 종속되지 않습니다. 존재하기만 하면 받아들이는 속도는 내 신체가 알아서 결정합니다. (책장을 넘기긴 해야겠지만 이건 정보를 의도적으로 분해해 놓은 것이니 예외라고 하겠습니다.)

남은 둘, 글과 이미지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글의 장점은 아무래도 압축률일 것 같습니다. 반대로 이미지는 구체성이 장점입니다. 이미지는 체험에 가깝고, 글은 정보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덤으로 글은 가성비가 좋습니다.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 저장할 때 차지하는 용량, 화면에 표시할 때 필요한 화소 등 거의 모든 면에서요. 요즘은 기가바이트가 기본 단위라 이런 게 의미 없다고 느끼실 수 있지만요.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이것을 고려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기업들은 이제 문자로 된 정보를 관리하지 않습니다. 당장 유튜브와 구글에 동일한 검색을 해서 나오는 결과를 비교해 보세요. 유튜브는 고품질 컨텐츠를 잘 골라 노출시켜주는 반면 구글은 양산형 저품질 정보글을 피하는 것이 더 힘듭니다. 과연 이것이 웹페이지와 동영상의 한계 때문일까요? 저는 관심도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적인 관심이 소비하기 쉽고 재밌는 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대량의 정보를 다뤄야 하는 기업에서는 달라야 합니다. 이대로 인터넷의 글이 죽어버리면 빅데이터 시장과 AI 산업의 한계가 급속도로 찾아올 것입니다. 특정 기업에서 인터넷의 활자를 부활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퀄리티와 보상 체계가 뛰어난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필요한 시점이 오기 전에, 생태계가 더 망가지기 전에 변화가 시작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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